되는대로 간사이 여행기 (9)

* 지난 줄거리 : 아라시야마에서 또 눈을 만났다-┌

교토 서부 아라시야마 지역을 대충 훑고 난 후, 오후 1시경에 긴테쓰 교토역에서 나라로 가는 차를 기다렸습니다.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갈 수 있는 나라행 특급 열차는 거의 한 시간 뒤에야 있어서, 바람 쌩쌩 들어오는 추운 역사에서 벌벌 떨고 있었죠ㅠㅠ 마침내 열차가 들어오고, 사슴으로 유명한 도시 나라로 출발~!


짤방 - 나라공원에 널리고 널린 사슴 중 1마리




긴테쓰 나라역에서 나라공원 방면으로 나오시면 표지판이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줍니다. 이 동네는 표지판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여기저기 표지판이 많고, 또 정확하게 잘 되어 있어서 저같은 희대의 길치도 여행하기 무척 편했습니다.


나라공원으로 가는 길.. 이라고 하기에도 뭣한-_-; 여기부터 사실상 나라공원이라고 봐도 되거든요. 길 양옆에는 벌써부터 사슴들이 한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슴을 보고 '오옷' 하면서 셔터를 들이댔습니다. 사슴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든 말든 사진찍든 말든 감탄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유유자적.. 처음에는 어슬렁대는 사슴이 신기하고 귀여워서 셔터를 막 눌렀는데, 도다이지(東大寺)에 도착할 즈음에는 '..사슴따위는 지겨우어어어어어' 모드가 될 정도로 사슴이 많았습니다-_-;;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사슴이 아니라 다른 사슴들이 먹는 사슴 센베 과자-_-를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 사슴 전용 센베 과자는 150엔인데 사람이 먹으면 맛 없구요-_-; 나라공원의 사슴들은 하도 사람 손을 타서 순수함을 잃어버린지 오래라 과자 안 들고 있으면 가까이 오지도 않습니다-_-


그래서 '아니 무슨 사슴 먹이가 천원이 넘어!!! 이 씨빌라이제이션같은!!' 라고 맘 속으로 외치며 사슴 센베 따위엔 눈길도 안 줬던 저는 사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_-;;; 때문에 가까이서 찍기 좀 힘들었어요. 이건 제 카메라를 먹이-_-로 착각하고 온 녀석..


공원에 사슴들이 저렇게 널부러져 있다가, 관광객이 먹이를 들고 오면 벌떡 일어나 민첩하게 다가옵니다-_- 별로 난폭하지는 않고요.. 단,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면 쟤네들도 열받아서 발을 쿵쿵 구르며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기도 하니 약올리지 마세요. 과자는 그냥 얌전하게 주시는 게 좋습니다-ㅅ-;


저놈의 사슴 떼거리 때문에 표지판도 놓치고 방향감각도 잃어서 도다이지의 정문을 지나쳐 버렸습니다-_- 시텐노지 때에도 그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 절집 정문과 인연이 없는 듯-_-;;;


그래도 이런 길은 좋았지요. 봄철에 오면 근사했을 텐데..ㅠㅠ


도다이지 뒤편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풀을 뜯는 사슴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사슴의 본분에 충실한 사슴들을 처음 봐서 정말 감격했습니다-_-;; 관광객 많은 대로변에 있는 사슴들은 풀을 안 먹거든요..-┌


한적하고 평화로운, 제가 원하던 나라공원의 풍경.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걸어서야 목적지인 다이부쓰덴(대홍전)에 도착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인데, 저런 사진으로 보면 실감이 안 나지요.


이것은 남대문인가.. 하여튼 그래요-_-; 이 대문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다이부쓰덴을 보면 할 말을 잃습니다. 정말 '쓸데없이 크다' 라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_-;; 저 아래에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건물 크기를 비교해 보시면 다이부쓰덴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어진 건축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저 건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어가보려면 5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밖에서 어차피 다 보이는데 입장료 아깝다' 라고 생각한 저는 사진만 몇 장 찍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다이부쓰덴 안에는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불상(15m래요..)이 안치되어 있다고.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든 말든 유유자적 햇살만 쬐고 있던 다이부쓰덴 앞의 사슴님;


다이부쓰덴 오른편 길로 올라가면 신사가 하나 나옵니다. 천향산 신사 라고 한문으로 친절하게 써 놨는데 일본어로는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습니다-_-; 다이부쓰덴 덜렁 하나 보고 돌아가는 건 억울해서 신사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가는 길이 꽤 멋있습니다. 널찍한 길 양편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시원하게 가지를 뻗어줘서 마치 회랑 같은 느낌입니다. 여름에 오면 해를 다 가려줘서 좋을 듯 싶은데, 전 한겨울에 가서... 열라 추웠어요ㅠㅠ


오르막 끝에는 이런 신사가 있습니다. 안은 뭐.. 별로 볼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궁금하신 호기심천국 여러분들을 위해.. 속은 이렇게 생겼어요. 대충 저 앞쪽 제단에서 소원을 빌면 되지 싶은데, 전 그런 걸 믿지 않는 사람이라 그냥 지나갔습니다.


여긴 다이부쓰덴에서도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언덕 꼭대기인데.. 이곳에도 어김없이 사슴들은 있었습니다. 틈새 시장을 개척한 덕에 여기까지 온 관광객으로부터 많은 귀여움을 받고 있었죠.. 얘네 좀 짱인 듯.


신사에서 나오니 일월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헉 동방불패의 일월신교!?' .. 와 같은 1g 값어치도 없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가며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도다이지도 계단 많고 언덕 많은데, 전날 히메지성 천수각의 비매너 계단에 단련된 저는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스텝을 밟았습니다.


일월당은 일종의 누각인데, 입장이 무료입니다. (우왕ㅋ굳ㅋ) 마루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나라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날이 맑았으면 경치 정말 좋았을 텐데, 일본에서 바람과 눈의 정령-_-으로 거듭난 저는 그런 좋은 날씨를 맞이하지 못했어요.. 엉엉.


물론 도다이지 내부도 다 보입니다. 왼쪽 위편으로 빼꼼하게 솟아 있는 지붕이 바로 다이부쓰덴. 하여튼 우라지게 큽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크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큽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여기서 사진을 찍고 계시고, 어떤 아저씨가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계시길래 저도 괜히 카메라를 들이대 봤습니다. 오.. 나름 그림이 나오는군요. 저기 보이는 건물이 바로 일월당.


다시 다이부쓰덴을 끼고 돌아 이번에는 제대로 정문으로 나옵니다-_-; 정문도 울트라 사이즈에요.. 제가 일본에서 절만 10곳을 다녔는데 도다이지 건물들이 제일 규모가 컸어요. 그리고 절 앞쪽은 그야말로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습니다-_-;; 입구 양쪽에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버글버글버글버글...@_@ 사람에 치여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긴, 나라에서 제일 인기있는 관광지니까요..


관광객들이 먹이를 안 주는지 애꿎은 종이봉지를 씹는 사슴-_-;


사슴이 넘치고 넘쳐 절 앞의 기념품 가게에도 또 사슴!.. 그런데 저게 사슴이야 코알라야 캥거루야...-┌ 21세기의 퓨전 양식을 보여주고 있군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번뇌 지수가 오히려 상승하는 도다이지를 떠나, 나라의 또 다른 명찰 고후쿠지로 갑니다. 아름다운 목탑으로 유명한 사찰로, 현재 복원 공사중이라서 사람이 적었습니다.


우아하게 잘 만들어진 목탑입니다. 아마 세계문화유산일걸요-_-;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찰칵.. 이 때가 오후 3시 30분 정도였는데, 날은 잔뜩 흐려지고 바람은 쌩쌩 불고 손가락은 얼어서 셔터가 안 눌러지는 경지에 도달했습니다....OTL


잔뜩 곱아서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억지로 놀려서 사진 한장 더 찍고..ㅠㅠ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나라를 떠났습니다. 헤이죠 시대의 궁터도 보고 싶었는데, 너무너무넘누머눔너무너눔너무너무 추워서 도저히 갈 수가 없더라고요.. 교토에서는 눈보라와 싸우고, 나라에서는 추위에 시달리고.. 이게 여행인지 고행인지..ㅠㅠ


Last, 이제는 지겨워지는 사슴 사진 한 장으로 나라편 마무리~; 오사카로 컴백 고고씽~


* 올리다보니 또 사진이 많아졌네요. 오사카의 밤거리 편은 다음 시간에=ㅅ=;

by Reds | 2008/02/15 15:25 | 여행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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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언어술사 at 2008/02/17 12:18
쓰읍-ㅠ- 다들 맛있게 생겼군요.
Commented by Azel at 2008/02/17 21:05
사슴이 정말... 겁나 많군요 ㄱ-
그런데 저 사슴들은 원래 뿔이없는 사슴들인가요 아면
...뿔을 사람이 다듬어준건가요?

뿔이 잘린 사슴도 있고 원래 없어보이는 사슴도 있어서 궁금해지네용 ㅇㅂㅇ
Commented by Reds at 2008/02/19 18:05
언어술사님//.....헉?! 그 말의 의미는..ㄷㄷ

아젤님//뿔 없는 사슴은 암컷이나 아기사슴이고, 뿔이 잘린 애들은 겨울이 되어 뿔이 뚝 떨어져 나간 숫사슴 녀석들일거에요 ㅎㅎ 사슴들은 겨울이 되면 뿔이 떨어져 나간다고 하더군요..@_@ 그리고 봄에 새 뿔이 돋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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